1. 인사말
  2. 교회의 역사
  3. 섬기는 분
  4. 성구와 시설
  5. 집회시간
  6. 약도
  7. Seoulch 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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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회의 역사

>>창립의 배경
1924년 11월 16일 hw_02_t.jpg
하와이 기독교 동지회 결성(이승만 박사와 이종관 목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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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와이 한인교회 창립 hw_01.jpg
한국 하와이 한인교회 창립 hw_02.jpg
하와이 기독교 동지회(이승만 박사와 이종관 목사 등)에서 한국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의
1958년 5월 1일 애국운동의 요람지인 미국 하와이 한인교회에서 조국해방을 위해 예배 드리며, 이승만 박사와 함께 하였던 한인 교포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으며 하와이한인독립기념교회를 조국의 수도 서울에 세우기를 열망하였다.
당시 하와이 한인교회 이종관 목사가 귀국하여 하와이한인기독교회의 모국선교기념교회로 교회건립을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에게 건의, 육군공병단의 지원과 각계 후원으로 현위치에 본 교회를 건립하고 명칭을 "하와이한인기독교독립교회"로 창립하였다.
>>지나온 초창기
1959년 이종관 목사 별세로 부목사 안수훈 목사와 경무대(지금 청와대)에서 추천한 최재국 목사와 황금천 목사가 선교동역자로 시무하였다.
1960년 ~ 1964년 4.19 발생으로 이승만 박사가 추천한 황금천 목사와 초대 부목사 안수훈 목사 사이에 교회 수호를 위한 분쟁이 발생하였다. 교회는 평신도회(회장 최낙흥)를 조직하여 법정투쟁을 궐기하고, 하와이 한인 기독교본부에 보고하였다. 하와이 한인 기독교 본부에서는 임시총회를 소집하여 서울 한인 기독교 독립교회의 운영권을 평신도회에 위임키로 결의함으로, 최낙흥, 유성덕 두 분은 3 개월 10일간의 감옥에서 풀려나고 4년여의 교회분규가 끝이났다.

교회 분규 과정에 김춘배 목사(1961년), 황봉찬 목사(1962년), 문재린 목사(1963년), 이순경 목사(1964년) 시무하다.
1964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과 함께 교회 명칭을 "서울교회"로 하다.
1965년 1월 3일 김승순, 한규순, 김화 ?, 권사 임직하였다.
1965년 6월 13일 최낙흥 장로 취임예배 드리다. 사회 : 한장형 목사, 기도 : 문재린 목사, 설교 : 김재준 박사, 권면 : 김춘배, 인광식 목사, 축도 : 총회장 이해영 목사.
1967년 1월 5일 한장형 목사가 한국기독교 장로회 서울교회 초대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한장형목사님
최승일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다.
교회 재산(대지 421.8평과 1 층200평,2층153평 건평 303평)을 총회유지재단에 등기부 등록하였다.
1972년 12월 10일 배성산 목사 제2대 담임목사 부임하였다.
배성산목사님
>>교회의 공간
1973년 4월 9일 교회 목사관 마련
1973년 6월 23일 교회지붕 도단을 스레트로 200평 개량
1973년 7월 4일 교회 화장실 신설
1973년 8월 1일 교회내외수리 및 보수 단장
1973년 8월 10일 전화신설(73-3698)
1975년 5월 8일 제1교육관(소예배실) 마련
1978년 5월 2일 제2교육관 마련(대내외 교육장)
>>교회의 선교
1980년 5월 4일 교회창립 22주년 기념예배와 김정숙, 이복명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다.
1982년 7월 4일 어린이 기독교 교육과 선교영역 확대를 위해 '옥인서울유치원'을 중부교육청으로부터 설립허가 받아 개원하다.
1983년 ~ 1987년 배움의 기회를 갖지못한 사람들에게 검정고시를 치를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마련하고, 신앙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야학을 설립하였다. 명칭을 '서울야학'으로, 교장을 배성산 목사로, 교무를 박하석 선생으로 하다. 21명의 교사진과 13명의 학생들이 교회1층 교육관에서 수업을 하다.

'성베다교회(명륜동 소재)'의 '성베다야학'이 폐교함에 따라 인수하여, 교사 40여명과 학생 30여 명의 야학으로 활동하다.
1985년 10월 서울교회 부설 서울야학의 활동과 성격이 검정고시만을 돕는 '검정고시 야학'으로는 현실성이 결여되어 '서울노동야학'으로 바꾸고(교장 배성산 목사, 교무 정진욱 선생), 교사들의 활동을 구로동과 성수동 일대의 노동자 운동을 돕는 야학으로 진출하여 활동하다.
1987년 6월 28일 김성곤 장로 취임과 배덕례, 최정은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다.
1988년 3월 2일 지역선교활동으로 '효자어린이집'을 종로구청으로부터 설립허가 받아 개원하여 현재에 이르다.
1990년 3월 5일 서울중부교육청의 요청으로 '옥인서울유치원' 명칭을 '새서울유치원'으로 개칭하고, 현재에 이르다.
1994년 5월 1일 교회창립 36주년 기념예배와 강복순, 장경자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다.
1994년3월~1996년2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옥인교회 교회신축기간 동안 예배 처소를 제공하고 시간제 예배를 드리다.
1995년 12월 1일 배안용 목사 안수 후 부목사 임직
1996년 1월 20일 지역 주민을 위한 예비군 정신교육장 및 결혼식장 개방을 위해 예배실 개방.
1996년 서울교회 마크(도안) 제작(배안용목사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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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효자어린이집에 대한 시설 정부 보조 5천만원과 교회헌금 4천만원으로 교회건물을 전체 수리 보수 하고, 교육시설을 현대식 건물로 개축하며, 인터폰 설치, 전화번호 5개(대표전화 737-3698, 교회사택 736-3698, 새서울유치원 732-3698, 효자어린이집 720-3698, 팩스 및 컴퓨터 통신 전용 734-3698, E-mail : jdosa@hitel.net와 jdosa@unitel.co.kr) 증설 하다.
1998년 5월 3일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예배와 정화종, 김용문, 조명환, 박귀심, 문동자, 박순남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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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신앙지침
信之 民衆化 숫자나 양 속에서 신앙의 힘과 기독교의 저력을 찾으려는 한국교회의 고질적 병폐를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 정치구도가 그렇듯이 오만한 허세를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 이기심과 탈역사, 탈사회를 위해 한국 교회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억울하게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게 되고 소외되고 병들고 옥에 갇힌 형제나 이웃의 모습으로 민중의 삶의 현장에 오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信之 民衆化의 믿음을 갖는다.
望之 歷史化 해방후 서구화, 민주화, 도시화, 산업화 등의 구조적 변화는 한국 국민의 욕구 수준을 상승시켰다. 그로 인해 개인 이기주의와 구조적 부조리가 문화풍토에서 번창하여 개인의 범죄와 제도화된 부정부패가 오늘의 현실을 어둡게 하고 있다. 목표를 정당하게, 그리고 착실히 달성하려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편법주의가 이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근본적으로 혼란케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 한국 교회는 구체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상황에서 요청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참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기에 望之 歷史化로 희망을 갖는다.
愛之 人間化 한국 교회가 선교 2세기를 지나 온 과거사에 무당화한 신자로 교회가 확장되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다고 날뛰는 교인들로 전국 복음화가 실현될 것인가? 심히 두려운 마음이 든다. 이 시대에 불한당을 만난 이웃이 있다. 여리고 언덕에 쓰러져 있는 저 민중을 외면하고 변화산상에 베드로가 세우려 했던 그 초연한 장막 교회에만 몰려드는 그러한 교인들로 민족 복음화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여리고 언덕에 쓰러진 그 보잘것없는 민중의 깨어진 인간성을 온전케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인간성을 깨뜨린 강도떼를 박멸하려는 한국적 사마리아인이 필요하기에 愛之 人間化의 생활지침을 갖는다.
>>인터넷 서울교회
1992년 ~1998년 PC 통신 '하이텔' 기독교선교회 방에 매주 설교문 서비스(대한민국 최다 통신 설교)
1998년 11월 1일 두리넷을 운영하는 구미 안디옥교회 전대환 목사의 협조로 교회 독립 도메인을 확보하고 인터넷 써비스를 시작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1998년 11월 5일 www.seoulch.or.kr 서울교회 홈페이지로 인터넷 서비스 시작하다.
2000년 8월 13일 설교 녹음방송 / 성가대 찬양 방송
>>21세기 희망운동
2001년 2월 4일 서울교회 기획위원회 설립
2003년 1월 1일 가정중심의 교회 체계로 나가기 위한 취미활동/악기 연주반 운영
2005년 1월 16일 문정렬, 곽종준 장로 피택
2005년 6월 19일 본당에 리모델링 공사, 47년된 강단과 객석 재설치 및 3층을 새로 만듦
오디오 및 각종 영상 장비 공사
2005년 9월 디자이너 변민숙 집사가 교회 새로고 개발하다.
일반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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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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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줄 문자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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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8일 성전봉헌예배 및 문정렬 곽종준 장로임직, 유인순 권사임직식
2008년 6월 1일 anybaeweb.jpg제3대 담임목사로 배안용 목사 취임
2012년 5월 8일 parkbc.jpg박병철 목사 안수 후 부목사 임직